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S. 패튼 (문단 편집) === 출생과 성장 === >'''"생도들 차렷! 당황하지 마라. 지진은 곧 끝난다."''' > ---- > 사관생도 시절, 지진이 일어났을 때 당황해서 이리뛰고 저리뛰는 생도들 앞에 제복을 제대로 차려입고 나타나서 한 말 패튼은 남부의 부유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로버트 E. 리]]나 [[스톤월 잭슨]] 장군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랐고 남군 기병대 사령관으로 명성을 떨친 '회색 유령' 존 싱글톤 모스비와 친하게 지냈다. [[미국육군사관학교]] 1909년 졸업생이며 동기생으로 제이컵 데버스, 로버트 에이첼버거, 윌리엄 후드 심슨, 존 클리퍼드 하지스 리, 델로스 에몬스와 비록 중퇴하기는 했지만 코트니 하지스 등이 있는데 모두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상급부대 지휘관으로서 활약한 인물들이다. 패튼 하면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활화산 같은 성격의 사고뭉치 지휘관'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오죽하면 [[별명]]이 '''싸움닭'''. [[여우]]라 불리는 [[에르빈 롬멜]]과 비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외에도 '''사고뭉치''' 같은게 별명 중에서 그나마 가장 좋게 불리는 별명이다. 졸업하고 소위이던 시절인 1910년에 베아트리스 배닝 에이어 패튼(Beatrice Banning Ayer, 1886~1953)과 결혼했다. 전쟁에서 지랄맞은 명장, 개차반 장군이라는 멸칭으로 유명했으나 가정에선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고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었다. 때문에 패튼이 죽고나서 [[미망인]] 베아트리스는 패튼에 대한 영화 제작을 거절했는데, 보나마나 남편이 전쟁광으로 날뛰는 걸로 만드는 꼴을 볼 수 없다는게 이유였다. 어쨌든 성깔 한번 지랄맞았기 때문에 [[1915년]] 졸업생인 [[오마 브래들리]]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보다 늦게 진급했으며, 후배인 이 2명은 자신들의 선배가 사고치고 다니는 걸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졸업성적은 103명 중 46등이었으며 기병 병과로 임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